자유로운 이야기

엑셀을 다루다가 떠오른 인문학적 고찰 (성리학을 중심으로)

알파카100 2025. 4. 17. 14:55

아침의 커피 한 잔과 함께 엑셀 파일을 열고 수많은 셀들을 작성하던 중, 문득 학생 시절 강의실에서 배웠던 성리학 이론이 떠올랐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데이터와 숫자 뒤에는 단순한 계산 이상의 깊은 원리와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디지털 세계의 이면과 동서양 철학의 근본 진리에 대한 고찰이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성리학, 그게 뭐였더라?

성리학은 본질적으로 우주 만물의 규칙성과 근원적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이(理)’와 ‘기(氣)’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두 요소 간의 관계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논쟁과 해석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리론과 주기론입니다.

주리론은 ‘이’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세상의 현상은 우선 불변의 원리인 이(理)에 의해 결정되고, 그 이면에서 ‘기’가 후천적으로 작용하여 구체적인 형태나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엑셀에서 셀에 입력된 ‘데이터의 원시값’이 곧 그 셀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셀에 123이라는 숫자를 입력하면 그 숫자는 언제나 동일한 수학적 의미와 규칙을 담고 있으며, 이는 마치 ‘이’가 우주의 법칙처럼 불변의 진리로 작용한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주기론은 ‘기’가 우주의 근본적 요소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주기론에서는 세상의 모든 현상, 심지어 이(理)조차도 기의 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엑셀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셀의 ‘표시 형식’은 단순한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설정한 서식에 따라 달라진 모습입니다. 즉, 동일한 원시값 123이 셀에 입력되어 있더라도, ‘일반’ 형식, ‘화폐’ 형식, 또는 날짜 형식으로 표시될 때 각기 다른 의미와 미학을 띠게 됩니다. 이처럼 외형은 기의 변화, 즉 실제 데이터가 다채롭게 변주되며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셀에서 찾아낸 성리학의 원리

엑셀의 작동 원리를 통해 두 철학적 이론 사이의 대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셀에 저장되는 ‘실제 값(raw value)’은 주리론에서 말하는 변하지 않는 ‘이’와 유사합니다. 이 값은 수정이나 서식 변경 없이 그대로 존재하며, 계산이나 분석의 근간이 됩니다. 한편, 화면에 보이는 ‘표시 값(displayed value)’은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에 따라 꾸며진 겉모습으로, 주기론에서 말하는 기의 가변성과 유사합니다. 같은 숫자라도 서식에 따라 소수점 이하의 자리수가 달라지거나, 심지어는 날짜, 시간, 통화 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엑셀은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미니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셀 서식을 바꾸면 보이는 모습은 달라지지만, 그 안에 내재된 계산의 규칙과 논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리학에서 이(理)는 언제나 존재하고, 기(氣)가 변화함에 따라 세상이 다양하게 드러난다는 주장과 닮아 있습니다. 데이터의 본질과 가공 방식, 즉 근본적인 원리와 외부 변화하는 양상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엑셀 작업에서 벗어나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도 적용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마무리

학생 시절 길었던 강의 시간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갔던 성리학의 기본 개념(불변하는 이와 그에 따르는 기의 변화)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복잡한 디지털 데이터와도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입력되고, 어떤 규칙에 따라 계산되며, 사용자의 필요에 맞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생각할 때마다, 우주의 근본 원리와 세상의 다양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바라보기보다, 그 이면에 숨은 근본적 원리와 연결 관계를 탐구하는 습관은 우리 삶을 보다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엑셀을 다루며 단순한 오류 수정이나 숫자 입력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어떻게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순간은 마치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듯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데이터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인간의 사고 깊이를 탐구하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두 갈래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셀 하나하나에 담긴 수많은 가능성과, 그 이면에 흐르는 불멸의 원리를 다시 한 번 마주하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깊이 음미해보려 합니다. 엑셀 작업과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이 글이 여러분 각자의 삶에 또 다른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